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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파도 [김울프 작가 제공]


바다에 가서 파도를 보는 게 아변액
니고 듣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은 음악을 듣는 순간에서 출발했다.
검은 카세트테이프를 손가락으로 뒤집으며 다시 앞으로, 다시 뒤로 감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노래를 고르기보다는, 노래 사이의 공백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다. 그 틈엔 마치 이 세상의 소음이 전부 사라진 듯한, 바람 소리와 심장 소리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지금도황금포카성
종종 그런 정적을 그리워한다. 테이프가 돌아가다 잠시 멈출 때, 나도 숨을 멈추곤 했다.
바다를 처음 진심으로 바라본 건 그즈음이었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는 낡은 소형카세트를 들고 바닷가에 데려가셨다. 바닷소리를 들으며 공부하면 머리가 맑아진다며, 진지하게 파도 소리와 함께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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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저 파도가 음악에 겹쳐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바다를 볼 때마다 카세트테이프가 생각난다.



태풍 무이파 [김울프 작가 제공]


똑같은 장면, 같은 풍경, 그 안에서도 달실시간인터넷알박기방송
라지는 소리.
바다는 언제나 앞면과 뒷면이 있었고, 그 둘 사이엔 감기지도, 빨리 감기도 안 되는 시간의 밀물과 썰물이 흘렀다.
성인이 된 후로는 본격적으로 파도를 좇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파도가 마음에 박혔고, 그다음 날부터는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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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는 건 파도 그 자체가 아니라,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휘몰아치고 올라오고 찢기고 흩어지다 마지막에 뭔가 말하듯 툭, 터지는 찰나. 그 감정이 사람을 살게 했다.
그러다 태풍을 알게 됐다.



광안리 파도 [김울프 작가 제공]


나는 태풍을 사랑했다. 파괴를 말하는 기상청의 단어들은 내게 '기회'라는 뜻이었다. 세상이 숨죽이고 문을 닫는 날, 나는 창을 열고 짐을 꾸렸다.
파도가 온다. 진짜 파도다. 울진에서부터 해남까지, 포항을 거쳐 남해로, 서해의 갈매기조차 피하는 바위섬에 닿기까지. 그 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게 뼈에 와닿았다.
태풍이 오기 전 바다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고요한 절벽 아래, 물비늘 하나 없이 잔잔한 풍경을 보면 오히려 섬뜩했다. 마치 무대의 막이 오르기 직전, 모든 배우가 숨을 죽이고 있는 순간처럼. 그리고 어느 순간, 바람이 허공을 뒤집어 놓는다.
파도는 생명이었다. 심장이었다. 그것이 부서질 때, 나는 셔터를 눌렀고, 한 생을 찍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시절엔 예보도 조악했고,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는 지도로도 찾기 어려웠다. 엉뚱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민가도 없는 방파제 끝에 다다랐고, 쓸려간 철제 펜스를 넘어서 절벽 끝으로 향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출입 금지선을 넘어 구릉을 타다 다리가 빠지기도 했고, 파도를 맞이하다 카메라가 바닷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큰일은 없었다.
바다는 늘 내게 무엇을 하나씩 주고 갔다. 가장 고요한 분노, 가장 폭력적인 아름다움, 가장 짧은 영원을.
요즘은 그렇지 않다.
파도를 쫓는 이들에게는 오직 태풍만이 진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태풍이 오지 않았다. 아니, 태풍은 있었지만 오지 않았다. 한반도 근처로 다가왔다가 방향을 틀어 일본 쪽으로 빠져버렸다. 태풍을 타고 올라오는 벌레도 보이지 않고, 해수면이 그렇게 뜨거운데도 하늘은 잠잠했다.
남해 어느 포인트에선, 지역 어르신이 내게 말했다.
"요즘은 말이야, 바다도 사람을 안 받아."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태풍이 사라진 풍경은 너무 순하고, 너무 착하고, 그래서 너무 지루했다. 그렇게 욕망 없는 바다는, 어쩌면 죽은 것도 같았다.
파도가 사라진 해안선에서 나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다시 돌려봤다. 테이프는 예전처럼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중간쯤 끊긴 구간이 있었고, 거기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공백 속에서 나는 파도 소리를 떠올렸다. 언젠가 찍었던, 그러나 어느 폴더에도 없는, 기억 속 파도. 태풍이 지나간 뒤, 부서진 방파제와 흩어진 부표 사이로 갈매기 한 마리가 날고, 그 위로 뿌연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순간.
그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 바다는 다시 태풍을 받아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파도를 쫓을 것이다. 카세트테이프처럼 느리고 불편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방식으로. 그래야만 기억이 살아 있고, 풍경이 노래를 부르고, 바람이 말을 걸어온다.
다시, 파도를 기다린다.
앞면과 뒷면을 뒤집듯, 사라졌던 태풍이 다시 올라올 날을 기다린다.
노래와 노래 사이, 그 짧은 정적처럼.
그때 바다도 다시 말할 것이다. 이제 나의 차례라고.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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