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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은 어떻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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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제 작성일13-04-08 14:22 조회2,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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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기란 무엇인가?

 

-경전에서는 또 부처님께서 연기(緣起)를 깨달았다고 선언합니다. 중도와 더불어 연기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중요한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입니다.

 

-불교는 이 우주 만물이 연기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 우주는 누가 만들 수도 없고, 누가 없앨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不生不滅),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不增不感)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여 원융무애하게 존재할 뿐입니다. 불교는 이 우주를 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연기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기가 불교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기는 부처님이 창시한 것이 아닙니다. 연기법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시기 전에도 있었으며, 가신 뒤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연기법이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요.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잡아함 제20권>

 

-연기(緣起)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잡아함경>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우주 만물이 서로 의지해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볏단이 서로 의지해 서 있듯이 나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주변과 의지하면서 더불어 존재합니다. 생과 사, 선과 악, 유와 무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은 진리로서 정해져 있습니다. ‘법(法)’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하여 ‘연기법(緣起法 )’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연기법은 우주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즉,
연기법이란 우주 만물의 존재 법칙인 것입니다.

 

-모든 삼라만상은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의지하여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상호 의존하여 존재합니다.

 

-결국 우주 만물 중에 홀로 독립되어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의지하여 상생(相生)하면서 연기적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연기를 보는 사람은 法을 보며, 法을 보는 사람은 연기를 보느니라.” <중아함경>

 

“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며, 나를 보는 사람은 法을 보느니라.” <상응부경전>

 

-결론적으로, 연기를 바로 보는 것이 법을 바로 보는 것이며, 법을 바로 보는 것이 성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기를 바로 깨치면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것도 이 연기법을 몸으로 깨치고 인격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몸짓입니다.

 

 

5. 우주 만물은 연기로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현대 과학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최소 물질이란 것도 2~3가지 물체가 결합되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사는 집도 아파트든 단독 주택이든 실제로 집이 따로 독립되어 영원불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은 집이라는 모양을 갖추기 위해 수천수만가지 재료가 얽히고 섞여서 이루어집니다. 집이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물이 연기적으로 결합되어 존재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인 연기를 이해하면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존재의 실상을 바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소중함을 압니다. 서로 아끼고 존중합니다. 가까이는 내 가족부터 멀리는 산천초목까지 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한 몸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6. 연기를 이해한 우리의 삶과 수행



-
지혜롭고 평화롭게 사는 길 : 연기를 이해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물은 연기로 존재함으로 서로 평등합니다. 우주 만물이 서로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까닭에 작은 물건이라도 그 고유의 가치가 있고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니 그대로 존귀합니다.


우주 만물에서 먼지 하나,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
모두 가치가 있고 연기적으로 존재하니 모두 부처님입니다. 높은 것은 높은것대로, 낮은 것은 낮은 것대로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들은 모두 평등합니다.


  -모든 존재가 연기적으로 존재하니 모양(相)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양변을 여윈 지혜가 나오며 자연스럽게 실체가 없는 괴로움(苦) 역시 소멸될 수 있습니다.

 

-내가 연기로 존재한다는 존재 원리를 알면,
남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연기를 이해하면 모두가 하나라는
이치를 알게 됩니다. (一卽多 多卽一)

 

-모두가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치를 알지 못하니 나와 남을 차별하고 진보다 보수다,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분별.차별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와 같이 모양에 집착하여 양변에서 사고하면 대립과 갈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양을 모양으로 보되, 집착하지 않으면 정견이 가능합니다.

 

-수행은 이 연기의 이치를 머리가 아닌 삶으로 체화하는 것입니다.



수행의 목표는 연기를 깨달아 자유자재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7. 정견의 중요성과 수행

 

 

-누구든지 정견(正見 : 바른 견해)을 세워야 수행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정견은 불교 수행의 시작과 끝입니다. 정견을 세운다는 것은 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정견이 팔정도(八正道)에 제일 앞자리에 차지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정견은 시작이다. 왜 정견이 시작인가?


잘못된 견해는 잘못된 견해라고 이해하고,


바른 견해는 바른 견해라고 이해한다.“
<잡아함경>

 

 

-정견을 갖추기 위해선 부처님이 깨친 중도, 연기, 무아, 공 등 불교의 핵심 교법을 공부하여 이해하고 눈을 떠, 그것을 실천하고야 말겠다는 신심과 발심으로 전개 되어야 합니다.

 

-정견과 신심과 발심은 수행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견만 갖추어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인 삼독심(탐욕. 화. 어리석음)여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길을 알게 됩니다.

 

-정견(正見)과 사견(邪見)의 차이는 양변에서 보느냐, 양변을 여의고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즉 자기의 주관적인 선입견에서 보느냐, 그러한 주관적인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보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중도. 연기로 이해하고 보면 바른 견해이고, 이를 벗어나 삼독심으로 집착하여 보고 판단하면 사견(邪見)입니다.

 

-이 정견을 완전히 완벽하게 갖추려면 올바른 수행을 통해 깨칠 때 가능합니다만, 이치상으로 정견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처님이 깨친 중도와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중도와 연기가 무엇인지 이해하셨나요?

 

그렇다면 중도와 연기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요?

 

중도는 연기에 입각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세간에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는 있다는 견해요, 둘째는 없다는 견해이다. 이 두극단을 멀리 여의고, 생(生)하거나 멸(滅)하는 것을 연기의 도리에 입각하여 올바로 보는 것이 중도(中道)이다.“  <가전연경>

 

-부처님 말씀이 세간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으니, 있다(有)와 없다(無)라는 것입니다. 나와 너. 선과 악. 인간과 신. 부처와 중생. 번뇌와 보리 등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여래는 이 극단을 떠나서 중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는‘ 연기의 도리를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중도(中道)란 연기(緣起)의 도리로 세상 만물을 보는 것을 말하니,


이것이 곧 정견(正見)입니다.

 

- 중도 정견이 부처님께서 깨치신 근본자리이고, 본래면목, 본래 그 자리, 본래 부처 등등으로 표현하는데, 이 중도 정견을 성취하려면 수행을 해서 마음을 깨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중도. 연기를 이해하고 실천하여 좋은 사람, 좋은 이웃,좋은 사회, 평화로운 사회가 되도록 다같이 노력해 나갑시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이것이 생김으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음으로 저것이 죽는다.
이는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어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어서
하나도 서로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이 깊은 眞理는 부처님께서 크게 외치는 緣起의 법칙이니 만물은
원래부터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쪽을 해치면 저쪽은 따라서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습니다.
남을 해치면 내가 죽고 남을 도우면 내가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근본진리를 알면
남을 해치려고 해도 해칠 수가 없읍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자기만 살겠다고 남을 헤치며 날뛰는 무리들이여 !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웁시다.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남을 돕는 것 밖에 없읍니다
.
아무리 상반된 처지에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침해와 투쟁을 버리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물과 불은 상극된 물체이지만

물과 불을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는 데서

우리 생활의 기반이 서게 됩니다.동생동사(同生同死), 동고동락(同苦同樂)의

대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침해의 무기를 버리고

우리의 모든 힘을 상호협조에 경주하여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전진하되

나를 가장 해치는 상대를 제일 먼저 도웁시다.


그러면 평화와 자유로 장엄한 이 낙원에

영원한 행복의 물결이 넘쳐 흐를 것입니다.

화창한 봄날 푸른 잔디에

황금빛 꽃사슴 낮잠을 자네.

 

<1984년 사월 초파일 성철스님 법어>




“자기가 있다는 생각(착각,집착)이 분별
망상을 일으킨다.

상대적 분별망상을 비우는게 수행이며,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자기를 비우는 수행을 통해, 타인을 돕는 이타행
(利他行)과 이타적(利他的)인 생활을 실천 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곧 자기를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정견(正見)은 나와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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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인과의 법칙을 믿고,
연기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만인. 만 생명이 차별이
없는
절대 평등한 중도의 세계라고 생각해봅니다.



보현보살 십대행원과, 실천(사무량심.사섭법.육바라밀.
관세음보살님 자비행...) 하는 대승보살의 정신을 생각해봅니다.


하심. 방하착.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의 
수행과
이타행(利他行)이, 자유로운 삶을 밝히는
이정표가 되기를...


번뇌. 망상. 분별. 차별. 집착. 아상 등 자유로운 삶을 밝히는 이정표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일어날 때는
바로 알아차리고,수행에 집중을 하며,


'일념으로 수행하면,
그것이 곧 내 마음 가운데의
부처님께
예배하는 길이 된다'
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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