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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은 어떻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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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제 작성일13-04-08 13:19 조회2,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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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큰스님 법어 ‘선수행의 길잡이’ 中에서


<김현준 엮음/ 효림출판사/ 2006.8.25 출간>


☞ 2005년 12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월간 「법공양」에 8개월 동안
연재한 법어 모음집

 


[불교공부는 일념공부] P.115~P.121

 

이 장에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수월(水月.
1855~1928) 스님의 법문을 기초로 삼아 엮어보겠습니다.


수월스님은 출가 후 천수다라니(千手大悲呪:신묘장구대다라니)를 7일 동안 밤낮 없이 외워 무명(無明)을 타파하였고, 그 뒤 경허선사(鏡虛禪師)를 찾아가 법맥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선정진을 꾸준히 하다가 말년에는 백두산 간도지방 등에서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음식을 제공했던 자비보살이요 숨은 도인입니다.

 

수월스님의 유일한 법문은 『달을 듣는 강물(김진태 지음,해냄)』이라는 책에 4페이지 가량 수록되어 있는데, 이 법문이 너무 좋아 복사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불교공부 하는 이들이 꼭 새겨야 할 요긴한 법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도를 닦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음을 모으는 거야.

 

별 것 아니야.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해서라도 마음만 모으면 되는 거야.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어떻게든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게야.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통달한 사람이야.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라 '옴마니반메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마찬가지야. 무엇을 하거나 마음을 모으기를 꾸준히 하여 아무리 생각을 안 할려고 해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만큼 해야 되는 게야.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것은 꼭 밥 먹기와 매 한가지야. 똑같은 밥 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맛있게 배불리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법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야. 염불을 열심히 해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까 잘 안 되는거야.

 

 

무슨 공부를 하든 일념(一念)으로 해야 해.

 

어떻하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도 저것도 다 쓸데없는 거여."

 

수월스님의 말씀처럼 불교공부는 도를 닦는 공부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얼마나 잘 모으느냐'가 성취의 관건이 됩니다.

 

꼭 참선을 해야만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염불수행을 통해서도 도를 이룰 수가 있고, 천수대비주나 '옴마니반메훔' 등의 주력(呪力) 수행을 통해서도 도를 이룰수가 있으며, 경전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 뜻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도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 관법 참회 보시 자비봉사행을 열심히 함으로써 도를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을 모으는 것이 어디에 이르러야 도통을 하는가?

 

꾸준히 정진하여 최소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생각이 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러야 합니다.

 

'관세음보살' 염불을 예로 들어 봅시다. 남과 대화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도 속으로 '관세음보살'염불이 한결같이 이어지고 늘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면 도통과 가까워집니다.

 

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하거나 꿈을 꾸거나, 늘 화두와 함께 하고 있으면 도통과 가까워집니다.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 수행방법을 택하여 꾸준히 마음을 모아가는 것이 불교의 공부입니다.어느 공부를 하던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만 잘 모아 일념을 이루면 도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염불 참선 주력 경전공부 등을 할 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공부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염불 주력 독경 참회 봉사 등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난의 해소와 세속적인 욕망의 성취, 현재의 평화와 행복 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가 성취되면 염불 주력 독경 등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닙니다.일종의 기도(祈禱)입니다. 매달리는 기도입니다. 열심히 매달려 가피를 입고 목표를 달성하였으니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공부는 다릅니다. 목표가 성불입니다. 눈앞의 고난해소와 일의 성취가 아니라, 도를 통하여 열반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불교공부입니다.

 

매달려 갈망하는 기도의 수준을 넘어서서 불교의 진리와 둘이 아니게 되는 불이(不二)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수행이요 불교공부입니다.

 

그러므로 매달리는 기도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수행으로, 공부로 진전시켜야 합니다.

 

눈앞의 목표가 실현되었다고 하여 염불 독경 등을 통한 기도를 그쳐버리면 공부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눈앞의 목표가 성취되었으면 부처님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성불하겠다'는 큰 원을 발하여 계속 염불 독경 주력 등을 닦아가야 합니다.

 

이때부터가 매달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스스로가 길을 찾아 닦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마음을 더욱 모아 수행에 임하면 기도할 때 이미 익힌 일념의 힘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빨리 도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를 쉽게 하려면 익힌 인연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있어서도 전생의 인연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생에 염불을 익힌 사람은 염불을 하는 것이 좋고, 주력을 한 사람이라면 주력을, 참선을 한 사람이라면 참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익혀왔기 때문에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하는 것입니다.

 

만약 도통한 선지식이 옆에 있다면 인연있는 공부를 금방 일러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이 주위에 없더라도 공부할 마음을 갖다보면 그 공부방법이 저절로 찾아듭니다. 유난히 염불을 하고 싶거나, 참선 쪽으로 자꾸만 마음이 쏠리게 되는데,이것이 전생인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때는 내 마음이 가는 쪽으로 공부 방법을 택하여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꼭 화두참선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수월수님의 말씀처럼, 먹기 싫고 어거지로 먹어 배탈이 나는 공부가 아니라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전생에 염불을 익힌 사람이 금생에 딴 공부를 하면 맛있게 먹지도 못하고 잘 소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전생 인연따라 잘 소화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하면 쉽게 일념을 이룰 수 있고 빨리 공부를 성취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깨달음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참선 관법 염불 주력 간경 참회 보살행 팔정도의 실천 등,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깨달음의 길은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길 중에서 전생부터 익혀 자신과 인연이 깊은 한 가지를 택하여 꾸준히 공부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마음이 쏠리고 인연이 있는 듯이 느껴지는 공부가 도무지 없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는 현생의 삶 속에서 다가오는 공부인연을 잘 숙고하여 선택하면 됩니다.곧 감명 깊게 읽은 한 권의 경전이나 책에 의지하여 수행방법을 정하거나 기도의 방법으로 선택하였던 염불 주력 독경 참회 등을 수행으로 공부로 연장시키는 것도 참으로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화두참선법이지만, 이것만이 궁극의 공부방법이 아닙니다. 수월스님의 가르침처럼, 불교의 여러 공부방법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일념을 이루는 것! 이것이 불교수행과 공부의 요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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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잘하려면,

 

☞ 불교 교법을 철저히 공부하여, 정견(正見)을 세우고 일상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 부처님의 깨침과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깨치고자 하는 마음(發心)을 내어야 합니다.

 

☞ 신심과 발심이 되면 선지식을 친견하여 참선을 하시는 분은 화두를 받아 참구하고 중간 중간 점검을 받는 지도를 통해 수행이 익어지면 인연이 도래하여 어느날 문득 확철대오하면 성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 다른 수행을 하는 불자님들도 자신의 공부 상태에 대해서는 선지식께 상담하고 중간 중간 점검을 받는 등의 올바른 지도가 있어야 엉뚱한 길(삿된 길. 삿된 수행)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수행은 정견, 신심, 발심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6. 선종(다른 수행도 마찬가지)에서 제시하는 본래 부처와 영원한 행복의 길

 

-우리가 깨치면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인간이 과연 깨칠 능력이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는 불교를 너무 어렵다하고 부처니 보살이 이론상으로 가능하지 실제는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만 합니다.

 

-과연 불교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깨딜음의 길은 그렇게 힘든 여정인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치시고 감탄하여 하신 말씀을 들어 보겠습
니다.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와 같은 지혜덕상이 있건만 분별망상에 가려 깨닫지 못하는 구나!“ <화엄경>

 

-성철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이 말씀은 불교의 시작과 끝을 압축하신 말씀으로 부처님이 인간성에 대하여 절대적인 능력을 인정한 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견“ 이라 찬탄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중생이 본래 부처(本來是佛)’ 라는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면서 그 이외의 설법은 방편입니다. 선종은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현실 이대로가 극락세계‘라고 봅니다. 선종에서는 성불, 즉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도 방편설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본래 부처인데 왜 부처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그럴까요? 그것은 중생이 본래 부처이나, 단지 분별망상에 가려 자기가 본래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본래 부처이나 착각으로 분별망상(욕심. 화. 어리석음의 삼독심)에 가려 지혜광명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거울을 비유해 보겠습니다. 거울에 때가 끼면 사물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듯 이 마음에 때가 끼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어둡게 봅니다. 거울의 때를 깨끗이 닦으면 거울이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거울의 때를 닦아서 벗겨내는 것이 점차적인 수행이라면,선종(좌선, 간화선)에서는 바로 그 때조차도 본래 없다는 점을 중시하는 것 입니다.

 

-마음에 삼독심이 낳은 혼란과 갈등을 비우면 지혜와 자비 광명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먹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본래부터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이를 견성(見性)이라 하며, 자기 마음을 바로 본다고 합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라고 이해하고 확신하여 마음의 분별망상 즉, 나. 너. 선. 악. 있다. 없다 등 모든 상대적 분별심을 비우는게 수행입니다. 불교 수행은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통해 영원한 행복의 길은 자기 마음의 분별망상을 비워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 생각이 복잡할 때 바로 알아차리고 수행으로 들어가면 그 복잡한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 보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면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이 잡생각, 즉 번뇌망상만 비우면 지혜 광명이 저절로 빛나듯이 부처가 됩니다.

 

-기 마음의 분별망상을 수행으로 다스리고,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로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열립니다. 그것은 이미 내안에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약]

 

-지금까지 말씀드렸듯이 불교의 목적은 공히 영원한 행복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를 깨쳐야 합니다.

 

-우리가 깨치기 위해서는,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인 불교의 교리를 바르게 공부하면 정견(正見)을 갖추고 신심과 발심을 내어 선지식을 친견하고 올바른 공부방법을 상담받고, 중간 중간 점검과 지도 등을 통해 수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끝으로 선종(다른 수행도 마찬가지)에서는 중생이 본래 부처와 같다고 보아 본래 부처의 입장에 철저히 체험과 실천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묻고 답하기]

 

-불교(佛敎)란 무엇인가?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입니다. 불교란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인 법(法)을 깨쳐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해결하여 영원한 자유와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인가?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친 분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를 깨쳐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뭘 깨쳤는가?

 

나와 우주만물의 존재원리인 중도와 연기를 깨쳤습니다. 깨치고 보니 우리가 이미 지혜와 자비가 완성되어 있음을 아셨습니다. 즉, 부처와 중생이 본래 하나고, 우리가 본래 부처의 마음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깨치면 어떻게 되는가?

 

부처가 되어 절대적인 자유와 영원한 행복,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생로병사에서 나오는 괴로움이 없어지고 절대적인 즐거움을 성취하여 매일 매일 좋은 날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짜증과 화가 없으며, 대립과 갈등을 평화와 지혜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다른 종교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가?

 

모든 종교는 다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점에서 같습니다. 하지만, 절대자에 의지하는 종교는 불교와는 그 추구하는 길이 다릅니다. 불교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 자체가 이미 성불해 있다고 보고, 인간의 본래 능력을 스스로의 믿음과 수행을 통해 성불해 있는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자기의 번뇌망상을 비우고 성불하는 것입니다. 성불하면 절대적인 자유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번뇌망상 자체가 불성이라고 봅니다. 번뇌망상을 떠나서 달리 깨달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번뇌하는 그 자리가 본래는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입니다.이러한 이치를 잘 알아야 수행을 올바르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수행에 참고가 될 이야기는?

 

우리 인간과 우주만물이 이미 본래 다 완성되어 있어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 그대로가 절대적으로 고귀하고 부처님 모습입니다. 다만, 착각으로 인해 분별망상에 가려 자기가 부처인 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부처가 중생노릇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확신을 하고 본래 모습대로 살겠다고 간절한 발심(發心)만 한다면 수행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교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신심과 발심이 나야 하는데 정견(正見)이 갖추어지지 않고 발심이 나지 않은 이들이 수행을 하면 어렵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발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행을 해도 일념이 되기가 어렵고 번뇌망상에 쌓여 망상과 씨름하다가 세월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발심만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다면 수행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나’라는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오온

 

영원불멸하는 실체적인 ‘나’.
본체로서의 ‘나’.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라고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고’가 생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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