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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진정한 의미(원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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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용 작성일12-10-18 12:55 조회4,4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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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에 참고가 되실 만한 내용이라서 올려봅니다.

# 원인스님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합천 해인사로 출가. 법전 대종사 상좌. 40 여년간 선방과 토굴에서 수행. 도림사 선원장을 거쳐 현재 수도암 선원장.

저서 "마음여행" "피안으로 가는 노래" "산사의 메아리," "대승정신(큰마음) 실천회 회주"로 계시면서, 대승사상의 실천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고 계신다. 다음 카페 대승정신(수도암)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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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의 진정한 의미


(2012.10.11)/수도암 선원장 원인스님


 오늘 이렇게 만산에 홍엽(紅葉)이 물든 가을에 보혜사 신도님들 성지순례로 수도암을 방문하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평생 동안 순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님들은 순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순례를 했을 때는 인생의 대 반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순례를 통해서 얻는 바가 매우 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암은 서기 859년, 지금부터 약 1150년 전에 도량에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창건 했는데, 국사께서 처음 이 도량을 보고 너무 좋아 일주일간을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도선국사 창건 터가 많지만, 그 가운데 수도암은 조금 특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사께서 여기 직접 오셔서 창건 일화가 몇가지 전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씨가 맑아서 가야산 연화봉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연화봉 앞에는 일자로 된 능선이 있어 일리제평(一理齊平) 이라는 불성의 평등한 성품의 바탕을 표현한 일자봉이 있고, 그 위에 나타난 연꽃 같은 봉우리인 연화봉이 보입니다. 연화봉이 이렇게 솟았으니 이 얼마나 절묘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이치를 진공 묘유라는 이치로 표현하는데 수도암의 전망은 이 이치에 정확하게 부합되고 있습니다. 진공은 우리의 평등한 체성을 말하고, 묘유는 작용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설법하시고,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여러 가지 팔만사천 거룩한 행들이 모두 묘유와 묘용에 해당합니다.

 

중생들에게는 업의 작용이 있습니다. 업의 작용은 망식의 소산이므로 묘유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망업이 없기 때문에 업의 작용이라고 하지 않고 진공의 이치에서 나오는 작용이므로 묘유가 됩니다.

 

묘유란 묘하게 존재하는 모습이라면 묘용이란 묘하게 움직이는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여기서 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불성의 본래 평등한 이치와 부합되기 때문에 진공을 따로 표현하지 않고, 진공이 곧 묘유요, 묘유가 곧 진공이라 둘 아닌 이치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선, 악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본래 청정한 불성의 자리, 우리 마음의 고향, 열반, 깨달음 등을 묘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도량의 특성을 바로 보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청정하고 묘한 이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 잎을 보면서 오늘 아침에 시 한편을 지었습니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온산에 가득한 붉은 잎 속에


절은 어디 있고 나는 어디 있는가!


나를 찾으면 나는 없고


절을 찾으면 절이 없다.


산에 와서 산을 찾으니 산을 보지 못하고


소를 타고 소를 찾으니 소를 보지 못한다.


나 이제 그대에게 산을 말해 주나니


온산에 가득한 붉은 잎이여!


산에 와서 산을 찾는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면, 그것은 물을 모르는 것이겠죠. 그러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모습이 바로 중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참 모습을 잘 보아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로 본다면, ‘참나’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불자님들! 가을에는 성지순례를 많이 합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에는 온 산에 나뭇잎은 오색의 빛을 발합니다. 특히 수도암은 동향이라 아침 햇살이 산을 비추면, 온 산은 붉게 물듭니다.

 

불자님들은 이 가을에 순례를 뜻 깊게 하려면 순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되겠지요. 그럼 무엇이 순례의 의미가 되는가요?

 

그리고 우리는 순례를 통해서 가는 도량마다, 성인들께서 교화를 펼치고, 정신세계를 깨우쳐 준 깊은 이치가 배여 있습니다. 불자님들은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단지 몇 천 년 전에 지어진 절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성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가는 곳 마다 절에 얽힌 뜻을 잘 알고 새길 때 큰 얻음이 있습니다.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창건 한 이후, 절 이름을 수도암이라고 했고, 산 이름을 수도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산 수도암 입니다. 여기에 절이 창건되면서 아래에 부락이 형성되어, 마을 이름도 수도리가 되었습니다.

 

* 왜 수도암이라고 했는가요?

 

수도암이란 말 그대로 도를 닦는 암자라는 뜻입니다. 불자님들은 여기에서 다겁생을 윤회하게 된 그 이유를 한번 돌이켜 보아야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도인들이 인생문제를 다 해결 했건만, 우리는 아직도 미혹에 휘둘려 나의 참모습을 깨우치지 못하고, 해탈의 길은 요원한데, 번뇌망상의 강물은 깊어만 가고, 따라서 가지가지 업력의 장애만 받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삼계 해탈하는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심으로 염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냉철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이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엮어나가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 현실을 누가 엮어나가겠느냐? 마음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서 현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보아야 됩니다.


마음을 보지 못하고, 현실을 보게 되면, 현실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경계에 끄달려 가는 형태에서는 전도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바로 보아야 되고, 내 마음을 바로 보는 자는 현재를 바로 보게 됩니다. 때문에 내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면, 현실을 거꾸로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을 나름대로 판단은 하겠지만, 그 판단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허공에 떠 있는 구름을 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옛날 선사는 말을 했습니다.

 

“그대들이 산이라고 한다면, 산이 아니다.

그대들이 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물이 아니다.

산비산(山非山) 수비수(水非水)“ 라고 했습니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말과 산을 산이라고 하면, 산이 아니요, 물을 물이라 하면, 물이 아니다, 라는 상반된 말에서 어떤 일체감을 이룰 수 있느냐? 이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여기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말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생각과 개념을 가지고 현실을 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과 악, 여러 가지 상대적 견해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견해들이 우리의 바른 견해를 잃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산이라고 하면, 산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물이다 하면 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산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산을 보기 때문에 산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산을 볼 때 우리 자신을 바로 보아야 됩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 보면, 산을 바로 보는 사람이에요.

 

즉 우리 자신을 바로보지 못하면, 산을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기 때문에 반야심경에서 전도몽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꾸로 보는 이 세상을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볼 때에 우리는 바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 우리는 바른 삶을 살아야 됩니다.

 

바른 삶의 결과는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는 좋은 결실을 거두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을에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백곡이 익어가는 이 가을에 태풍에 피해를 받지 않은 들판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의 결실을 바르게 수확해야 하듯이, 불자님들은 순례를 통해서 마음의 진정한 결실을 거두어야 합니다.

 

* 마음의 결실, 마음의 양식을 우리는 어떻게 거두어야 하는가요?

 

불자님들은 오늘 가을 성지순례를 통해서 이것을 깨우칠 때 진정한 성지순례가 되고 이익이 있습니다.

 

* 무엇이 우리들의 진정한 성지인가요?

 

다섯 가지 욕망이 물들지 않는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욕망이 침범할 수 없는 경계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곳도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어떤 곳도 성지라는 의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허물이 없다면 가는 곳마다 성지요,(隨處作主)


머무는 곳이 그대로 법당(立處皆眞)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있는 그대로 성지가 되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여여한 성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기 어려우므로 옛 도량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가을은 성지 순례의 계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어쩌면 이 사바세계에 온 순례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좋은 순례를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요?

 

순례를 통해서 사물을 보고 내 마음을 돌아볼 때


진정한 행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 마음의 가을 거기 결실의 기쁨이 있습니다.

 

맑은 하늘 흰 구름 화려한 단풍잎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그리고 하얀 눈,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발견을 이루어야 하고, 이에 따라 인생의 발견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발견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자유 그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례의 궁극적 목적은 순례를 통해서 자기를 만나는 일입니다.

 

*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이것이 순례의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순례를 통해서 자기를 만난다면 기나긴 인생의 순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러나 이와 같은 진정한 순례는 하지 못 하드라도 자연을 통해서 자기의 삶을 한번 돌아보고 마음에 모든 불필요함을 지워버리고 안락에 들어 갈 수 있다면 좋은 순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자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불자님들은 이 가을에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내 자신의 삶을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을순례의 의미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차를 타고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갔다가 오는 피곤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님들은 성지순례를 통해서 이 처럼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한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우리가 세속에 찌들었던 오욕락에 대한 집착심을 잠시 내려놓기만 해도 됩니다.



그러면 보입니다.


뭐가 보이는가요?


자기 자신이 살아온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바로 볼 때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좋은 가을 날씨 속에 성지순례를 통해서 우리 불자님들 마음속에 풍요롭고 행복한 마음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성지 순례에 대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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