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夏安居), 속세로 내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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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11-05-30 09:30 조회7,305회 댓글0건본문
일반신자 위한 '재가안거' - 상황에 맞게 실천계획 세워 석달 간 집에서 108배 등 수행, 올해 첫 시도… 1200명 신청
화가 성기화(45·경기 안산)씨는 지난 17일부터 저녁 약속도 잡지 않고 일찍 귀가한다. 친구들에게는 "앞으로 석 달간 계속 이럴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침과 밤에 하루 3시간씩 매일 참선하는 것이 목표로, 23일까지 8일 동안 단 한 번을 빼고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친구들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네가 과연?' 하는 반응이었지만 중요한 건 내 마음이잖아요. 수행점검표에 떳떳하고 자신 있게 동그라미를 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씨는 지금 '재가(在家) 안거' 중이다.
전국 14개 사찰이 공동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마련, 선승(禪僧)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하안거(夏安居)'를 일반 불교 신자들이 집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불교 NGO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회장 만초 스님)가 주도하는 '재가 안거 수행 결사'다. 하안거 결제(시작)일인 지난 17일부터 벌써 8일째 전국의 불자 1200여명이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수행을 실천하고 있다. 울산 해남사, 해남 미황사, 부산 흥법사와 미타선원, 대전 만불선원 등의 신자들이다.
- ▲ 22일 서울 수송동 열린선원. 해남 미황사 서울법회에 참석한 불자들이‘재가 안거 수행록’을 앞에 놓고 불경을 염송하고 있다. 미황사는 재가 안거‘실험’을 진행하는 중심 사찰 중 하나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하안거란 음력 4월 보름(올해는 5월 17일)부터 7월 보름까지 석 달간 산문(山門) 출입을 삼가고 매일 10여 시간씩 참선 수행에 매진하는 선승(禪僧)들의 집단 수행 전통. 하지만 '템플 스테이'나 단기 참선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행의 기쁨을 맛본 신자들이 늘면서, 안거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커져 왔다.
재가 안거는 신자들이 각자 정한 시간에 삼귀의(三歸依)로 시작, 108배나 참선, 염불, 사경(寫經·경전을 베껴 쓰는 것) 등의 '선택수행'을 한 뒤 수행서원문 염송으로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미소로 인사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며,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등의 '7보(步) 선행(善行)'도 기본수행에 포함된다. 각자 수행목록표에 매일 ○, △, ×로 실천 상황을 기록하고, 보름에 한 번씩 사찰별 법회에 참석해 주지 스님의 점검도 받는다.
울산 해남사 신도로 하루 1시간 아미타불 염송을 하기로 서원한 울산시교육청 총무과장 도재환(56)씨는 "반쯤은 ○를 친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 "그래도 사람들을 웃음으로 대하고, 따뜻한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라도 더 하려 애쓰게 된 것이 가장 큰 생활의 변화"라고 했다.
호텔 조리사로 일하다 작년에 퇴직한 길윤자(59·용인 죽전)씨는 아침저녁 90분씩 좌선(坐禪)과 1시간 행선(行禪)을 하기로 발심했고, 8일간 단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실천해냈다.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金剛)스님은 "수행을 위한 수행이 목적이 아니라, 불자들이 삶 속에서 분별심 없이 늘 긍정적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행은 어찌 보면 스님들보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는 조계종 포교원과 협의해 수행을 마친 불자들에게 포교원장 명의의 안거증도 수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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