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지 않은 기도는 욕심만 키울 뿐” [한겨레 21 - 2009.06.26 제7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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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6:25 조회6,673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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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금선사 대웅전에는 세 명의 부처님이 계신다. 노사나 부처님은 공덕을 많이 쌓은 중생을 칭찬하고 그에 응답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의 신음 소리가 들리면 어디건 찾아가서 천만 가지 형상으로 곁에 나타난다.
두 부처님 가운데 비로자나 부처님이 있다. 진리의 원래 자리다. 법(法)의 표상이다. 중생의 눈물을 닦고 등 두드려주는 것이 참된 법이요 진리라고 세 부처님은 매양 염화미소하고 계신다. 그 옆 작은 제단 사진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웃고 있다. 전국 사찰에 마련된 분향소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 유서 말이에요. 불가의 임종게(臨終偈) 같아요. 스님들이 생을 마감할 때 게송을 하거든요. 열반송(涅槃頌)이라고도 하지요. ‘슬퍼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그게 불가의 말이에요.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 생사와 열반이 모두 같은 모습이지요.” 6월17일 오후 금선사 주지 법안 스님을 만난 자리, 창가 앵두나무의 열매가 이제 막 붉어지기 시작했다. 생사를 걸고 진정을 말할 때, 삼라만물은 붉은 빛을 띤다. 지난 6월15일, 조계종 스님들이 발갛게 상기된 낯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법안 스님은 그 주역 가운데 하나다. 1979년에 출가한 스님은 지난 3월부터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를 맡고 있다.
- 이번 시국선언에 1447명이 참가했습니다. 전체 스님 수에 비하면 소수 아닌가요. = 절이나 성당, 교회는 사람들의 회한과 희망이 녹아 있는 곳이에요.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밑바닥 서민부터 최고 권력자까지 모두 망라하지요. 종교는 그 사람들 모두를 모두 포용하니까요. 그런데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했어요. 그런 (비판) 목소리의 저변이 확장됐다는 거지요. ‘소수’가 아니지요. 종단 내 스님들이 모두 1만2500명 정도입니다. 예비승을 빼면 1만 명 정도지요. 하안거 결재 기간이라 선방에 들어간 스님이 또 많고요. 서명을 5일 만에 받았어요. 원래는 1천 명만 받으려 했는데, 기자회견을 하는 순간까지도 서명 동참 신청이 들어왔어요. 서명 제안을 거절한 스님이 열의 하나둘뿐이에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이야기를 못 들은 스님들이 있어서 그렇지, 대다수 스님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지요. - 스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일이 낯익진 않았습니다.
= 불가의 수행은 지혜를 증장시키는 과정입니다. 지혜를 증장시켜 마음의 경계를 점점 넓히는 거지요. 그러다 완전히 경계가 무너지는 자리가 생겨요. ‘확철대오’(廓撤大悟)라 하지요. 경계를 뚫어서 크게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 반대로 가고 있어요. 표현과 행동을 자유롭게 하면서 민주주의의 경계를 계속 넓혀왔는데, 이게 갑자기 좁아졌어요. 지금까지 깨닫게 된 삶의 가치를 공연히 축소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그런 걸 보고 스님들이 외면할 수 없었어요. 승과 속은 둘이 아니지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힘있는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정책 일변도로 가고 있는데, 스님들이 외면할 수 없지요.
-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것이지요. 수사(修辭)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대화해야죠. 미안하다고 말로 하는 것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과하는 것은 다르지요. 국민들이 그걸 분간 못하겠어요? 우리 사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신뢰와 소통이에요. 민주화로 얻은 것이지요. 소통은 신뢰의 수단이 되고, 신뢰는 소통의 목적이 되고. 그런 바탕 위에서 수십 년간 쌓아올렸던 민주주의의 가치가 일순간에 무너지고 있잖아요. 산에 있는 스님들도 그걸 느끼는데….
= 그거 내가 넣으라고 했어요. <증일아함경>이라고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하신 말씀을 담은 경전이죠. 왕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씀했어요.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조그만 일로 큰 화를 내어 도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강한 것, 남의 충고를 듣지 않으며 자비심이 없고 포악한 것, 백성을 함부로 붙잡아 풀어주지 않는 것, 대신들의 충언을 믿지 않아 강직한 신하가 없는 것 등이죠. 모두 인용하고 싶었는데…. 앞으로 두고두고 인용할 겁니다.
- 조계종 주요 사찰과 많은 신도들은 영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남은 보수적 성향이 강합니다. 내부 반발은 없었나요. = 영남 지역에 사찰과 신도가 많지요. 그러나 불교의 보수성은 지역 문제와는 좀 다른 것이지요. 불교는 수행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집단이에요. 수행종단이라고 하지요. 수행을 본분으로 생각하니까 사회 변화에 참여하는 게 조금 더딜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본래 수행은 자비심으로 중생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참선하는 수행과 국민의 고통을 나누는 수행이 둘이 아니지요. 그러니 영남 지역의 스님과 신도들도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이지요. 지역에 있는 스님이나 신도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도 있어요. 이번 서명자 가운데 영남 지역 스님이 501명이나 됩니다. 지역 공직자들이 불교를 대할 때 함부로 무시하고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많지요.
- 이명박 정부가 종교를 차별한다고 보시나요. = 대통령이 불교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다른 종교를 잘 알 필요는 없다 해도 이해는 해줘야지요. 기독교 원리주의는 기독교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종교를 배제하지요. 아예 살피려고 하지 않지요. 그게 기독교의 청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요. 대통령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 아랫사람들도 따라갑니다. 서산대사가 ‘미심수도 단조무명’(迷心修道 但助無明)이란 말을 했어요. 마음을 비우지 않고 기도하면 욕심만 키울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 김영삼 전 대통령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그때는 달랐나요. = 그때는 청와대 참모들이 (불교계 인사들을) 많이 만났어요. 웃어른은 물론이고 중간이나 아래에 있는 여러 스님들, 여러 불가 단체들을 두루 만났지요.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당시에는 불교계의 재야였는데, (청와대 참모가) 우리도 만났어요. 여러 방식으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한 셈이었는데, 지금 정부 들어서는 그런 일이 아예 없어요. 우리한테도 그러니 (국민들과는) 얼마나 소통을 안 한다는 이야기겠어요.
-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어땠습니까. = 노 전 대통령은 불교와 직접 관련이 없지요. 송기인 신부한테 영세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송 신부가 종교생활을 자꾸 권하니까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잘 사는 것이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더군요. 1996년인가 서울 종로에서 출마할 때 우리 절에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주 작은 절이었지요. 오자마자 큰절을 하더군요. 불가에서는 스님과 대중이 처음 만나면 서로 큰절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뒤 다른 자리에서 봤더니 신분이 낮은 사람한테도 깍듯하게 하더군요. (불심이라기보다)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려는 마음이었어요. 부인은 불심이 강한데, 청와대에 있던 5년 동안 절에 못 나갔대요. 청와대 사저 뒤에 부처님상이 있거든요. 그 앞에 불전함도 있어요. 부인께서 거기 모인 불전금을 정권 인수인계 끝날 무렵에야 봉은사에 가서 드렸답니다. 속으로는 불심이 있어도 다른 종교인들의 마음이 무거워질까봐 5년 동안 절대 그런 티를 안 냈던 것이지요.
- 노무현 정부 때도 불교계와 갈등을 빚은 적은 있지 않습니까. = 그래요. 불교계가 지난 정부와 사이가 꼭 좋았던 것은 아니지요. 사패산 터널이랄지 천성산 문제랄지, 갈등이 컸지요. 그래도 그런 갈등을 처리하는 자세와 태도가 지금 정부와는 달랐지요. (노무현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사패산 터널 같은 것은 바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계속 설득했어요. 참모진이 직접 불교계 사람들을 만났어요. 마지막에는 노 전 대통령이 종단 최고 어른인 종정 스님을 찾아가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런 건 이명박 정부가 좀 배워야 해요. 그게 불교만의 문제겠어요? 당신들의 요구를 못 들어줘 미안하다는 것하고, 이런 일을 하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지요. 절에서 산신제를 지내잖아요. 그건 미신이 아니에요. 이 자리에 와서 두루 섞여 살 테니 허락해달라고 청하는 것이지요. 내가 지낼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다르죠.
- 1970∼8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던 종교 세력은 가톨릭이나 개신교였습니다. 불교계가 과거에는 침묵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나선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요. = 1980년대에는 기독교 장로회 소속 목사님들이 많이 활동했지요. 가톨릭도 사제단이나 농민회가 민주화에 많이 기여해지요. 당시 불교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조계종 승단이 자기 모양을 갖추고 승려를 교육하는 체계가 불완전했지요. 80년대 중반부터 종단이 모양을 갖췄고, 특히 1994년 종단개혁 이후로 구조가 안정됐지요. 그때부터 사회적 안목이 넓어졌어요.
-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수배 중이던 광우병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서울 조계사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1980년대의 명동성당이 생각나더군요. = 불가에서는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부처님 품으로 오는 것을 내치지 않아요. 석가모니 부처님 때의 일이에요. 앙굴마라고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부처님 곁으로 왔어요. 부처님께 배움을 얻어 절에 들어갔지요. 왕이 찾아와 앙굴마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지요. 왕은 그냥 돌아갔고요. 부처님의 자비심에 의지해 부처님 품으로 왔는데 어찌 내치나요. 인연 따라 오고 가는 것이지요. 떠나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지요.
- 한국 불교는 ‘호국불교’인데, 왜 정부에 반대하느냐는 이야기는 듣지 않으시나요. = 호국은 권력자나 가진 자의 입장에 서는 게 아니지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대사가 출병을 굉장히 망설여요. 그러다가 왜군에게 평양성을 뺏기고 많은 백성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눈물 흘리며 비로소 출병을 결심해요. 그게 진정한 호국이지요. 진정한 호국은 백성의 마음을 읽고 고통을 나누는 것이지요.
인터뷰 끝 무렵, 법안 스님은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과 함께하는 그 순간 그 자리가 불국토”라고 말했던 유마 거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통령이라면 용산 참사를 보고 눈물을 흘려야지요.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면 겸허하게 지켜봐야 하고요. 더 나아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지요. 더 장한 일은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안 나오게 해야지요. 그 정도의 원력(願力)은 세워야지요.” 돌아나오는 절 앞마당에 수국이 피었다. 눈물 같은 꽃이 이제 막 돋아나고 있었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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