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 - 아름다운 나눔공동체 자비신행회 (2010년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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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10-12-10 15:07 조회7,208회 댓글0건본문
가난한 배 채우는 가장 자비로운 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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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찌르는 젓갈 냄새 뒤로 떡 찌는 냄새가 희미하게 풍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여기 저기 값을 흥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 쪽에서는 족발을 삶고, 한 쪽에서는 칼이 쓱쓱 순대를 썬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 손엔 나물과 야채가 담긴 검은 봉지가 들렸다. 놀지 못하고 끌려 온 게 억울한 듯 아이 표정이 뾰로통하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도 이런 저런 냄새와 소리에 섞여 시장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완성된다.
양 옆으로 늘어선 상가의 물건들 사이로 난 좁은 길. 그 길 구석에 군데군데 쪼그려 앉은 할머니들도 눈에 띈다. 할머니들은 텃밭이나 산에서 거둬 온 것들을 각자 앞에 내놓고 손님 없는 틈틈이 말을 나눈다. “아침은 자셨소?”, “아적 안 먹었재. 자리 맡을라먼 일찍 나와야 쓴께라.” 몇 마디 이어지다 끊긴다. 추운 날씨는 도회지 재래시장에 나온 시골 인심도 박하게 하는 모양이다.
시장 한 쪽에서는 ‘밥차’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재가불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흰쌀밥과 따듯한 국, 맛깔나게 보이는 반찬이 용기에 담겼다. 차곡차곡 도시락이 쌓였다. 이들은 ‘情’이란 글자가 새겨진 도시락을 들고 어딘가로 흩어졌다. 함께 나온 스님도 일손을 거들었다. 이윽고 시장에 행상 나온 할머니들에게 도시락이 배달됐다. 이들은 무릎을 굽혀 할머니들과 눈을 맞추고 도시락을 건넸다. 마주치는 눈빛에 정이 그득히 배었다. 이들에겐 원칙이 있다. 도시락을 전할 땐 반드시 앉아서 눈높이를 맞춘 다음 건넨다. 꼭 두 손으로 드린다. 음식은 자신들이 먹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장만한다. 때문에 이 ‘밥차’만 납시면 근처 식당에 가지 않고 ‘밥차’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기 일쑤다.
시장 행상 할머니께 무료 점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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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보성 대원사 현장 스님에게 공부하던 불자들이 ‘나눔과 공동체’란 뜻을 내 설립한 자비신행회(이사장 이화영)의 잔잔한 극성이었다. 2008년 5월 제작한 이동급식용 밥차가 지난해부터 말바우, 대인, 송정, 산수 등 광주광역시 재래시장 4곳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밥차에 딸려(?)나온 자비신행회 봉사단과 연화사, 원각사, 원효사, 금선사, 정안사, 문빈정사 신도들이 시장에 나온 행상 어르신들을 위해 ‘情 도시락’을 만들어 왔다.
지금껏 자비신행회가 실시한 ‘情 도시락 지원 사업’은 지난 11월까지 총 93회 이른다. 지난해만도 3000개에 가까운 도시락이 시장 행상 어르신들의 가난한 배를 채웠다. 텃밭서 가져온 나물류, 견과류를 팔아 얼마나 벌까. 푼돈 몇 푼 쥐려 점심을 건너뛰는 시장 행상 어르신들의 마음을 자비신행회가 어루만진 셈이다.
빛고을 광주에서 연꽃을 피우는 자비신행회. 이들이 따듯한 밥 한 끼의 정을 나눈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9년 창립과 함께 매주 네 차례, 하루 평균 120여 세대의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전했다. 2002년부터는 주4회 80여 세대 독거노인들에겐 밥, 국, 반찬 등 밑반찬을 무상으로 지원해왔다. 특히 2005년 3월부터는 투병 중인 환우를 간병하는 보호자들 가운데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거리상 문제로 끼니 해결이 불편한 이에게도 밑반찬을 드리고 있다. 또 2008년 7월부터 매주 화요일엔 장애인들에게 무료식당을 열었다.
따듯한 밥 한 끼의 정이지만 연꽃을 든 부처님과 이를 본 가섭존자의 미소가 아깝지 않다. 지금은 부설 기관인 한꽃노인복지센터에서 주로 하는 업무다.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 자비신행회 소속 회원 불자들은 더 없는 환희심을 느낀다. 보시바라밀이 날마다 좋은 날(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일구는 신심의 발로임을 알기 때문이다.
재가불자들의 동참은 줄을 이었고 덕분에 자비신행회도 월 평균 200여명의 봉사자가 활동하는 단체로 쑥쑥 자랐다. 부설 기관으로 한꽃노인복지센터, 한꽃茶문화아카데미, 한꽃외국인노동자센터, 자비나눔봉사단, 두손모아 호스피스, 다예가(茶禮家) 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주로 회원들의 다양한 봉사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탓이다. 2003년부터 한꽃외국인노동자센터를 개소해 외국인노동자들의 한국문화체험과 생활 지원 사업을 해 왔다. 또 2000년부터 호스피스자원봉사자를 양성해 화순전남대 호스피스병동에서 아름다운 임종을 돕고 있다.
매년 4억원씩 십시일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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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사업에 소요되는 경비가 국가 보조금 한 푼 없이 회비와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순수민간자원봉사단체라는 것이다. 현금과 물품 후원을 포함하면 1년에 4억원이 필요하지만 한 번도 국가보조를 받아본 적이 없다. 쌀은 광주, 전남지역 사찰에서 늘 후원이 들어와 걱정 해 본 적이 없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시장 행상 도시락 사업이 당첨돼 2000만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거절했다. 몇 가지 규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건네고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은 순수한 신심에서 우러난 자비행엔 맞지 않았다.
재가불자들의 신행단체라는 점은 늘 잊지 않는다. 이를 위해 불교교육과 더불어 반드시 봉사활동을 이어간다. 다른 단체와 차별화된 점이다. 불교교육으로 봉사자를 양성하고 봉사자는 교육을 받아 신심을 재무장한다. 2년 과정의 재가 화엄학림은 화엄경의 탐구와 실천을 통해 불자상을 정립하고 불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교육기관이다. 2006년 8월 시작된 MY리더스클럽은 지난 7월, 제8기까지 4년 동안 400여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더불어 피어나는 한꽃”이라는 자비신행회의 굳은 믿음 탓이다. 너와 나, 바람과 흙과 물과 무수한 미생물들이 한 송이 꽃을 피운다. 온 우주가 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갖은 힘을 쏟는다. 꽃 한 송이에 온 우주가 다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 자비신행회가 빛고을 광주에서 피우는 연꽃 세상은 인드라망 그물코처럼 생명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가 더불어 사는 길을 열어가는 정토다.
갖은 냄새와 소리가 섞인 재래시장 풍경 속 어딘가에서 따듯한 밥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도시락을 건넨 이가 웃고 건네받은 이가 웃는다. 환희심으로 젖은 가슴에 연꽃이 핀다.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산다는 우주의 법칙이 열리는 찰나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법정 스님 ‘산방한담’)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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