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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선 94호 : 세밑 끝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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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10-01-28 14:37 조회6,24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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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도봉산에 있는 어느 사찰을 들리게 되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눈은 도로를 가로질러 걸려있는 현수막의 글귀에 멈춥니다  그 글귀는 "경인년 새해맞이 동지기도"를 안내하는 현수막이었습니다. 아 벌써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12월이로구나. 어떤 해인들 다사다난 하지 않은 해가 있겠습니까마는 올 한해는 유난히도 역사적인 큰 변고가 많아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해였다고 생각됩니다.

 

     수출의 호조와 경기부양으로 경제가 나아졌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자영업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먼 이웃들의 얘기로 들립니다. 종교적 삶이란 무엇일까. 가장 실답게 살아가는 인생이란 또한 어떤 모습일까. 더불어 행복이란 어떻게 정의해야 될까요. 종교의 영역에서 앞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성직자라 합니다. 성스러운 직업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불교계에서는 성직자라는 말을 꺼려 합니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직업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가수행자라고 합니다. 세속적 삶을 벗어나 진리구도 만행을 하기 위해 정진하는 행자라는 뜻입니다.

 

     제가 금선사에 머문 지도 어언 15년이 넘어 서는데요. 늘 세밑에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정리의 말씀과 새해를 맞는 인사를 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수행자로서 살아온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진리를 구현한다는 게 무엇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한다면 그게 정토가 아닐까. 지혜의 첫걸음은 자기가 미흡하다는 것을 아는데 있다고 합니다. 깨닫지 못한 중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비록 자기 자신이 부족하고 모자라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행원이 아닐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 즈음하여 나 밖의 이웃들을 향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비의 마음은 무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깨끗한 마음, 곧고 바른  마음이라야 무심의 상태에 이른다고 합니다. 무심을 갖고 세상을 보고 느껴야 실상을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보는 안목을 가리켜 여실지견이라 합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무심으로 보는 것과 착심으로 보는 것은 천양지차가 됩니다. 공덕이라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 그런 행, 그것이 불교수행자들의 행이 아닐까요.

 

경인년 새해에는 금선사와 인연된 모든 불자행자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선사 주지 법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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