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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삶은 늘 어렵고 힘들었다. 1970∼1980년대, 가난이 부끄러움도 아니지만 결코 자랑도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가진 자에 대한 불만을 품은 채 대도시로 유학을 온 시골 학생들이 시위의 주동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긴 삶을 살아가는 데 가난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기에, 그 청년의 마음을 단정적으로 해석했던 거다. 하지만 가난이 나를 패배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의 삶을 일구어낸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업체입니다 .
나의 굳건한 신념은 종교를 떠나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믿음이었다. 젊어서 겪은 가난이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확신은 변함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내 잘못이다”라고 말한 빌 게이츠의 명언을 되새기며 스스로 다잡곤 했다. 그랬던 내가, 한 젊은이의 티셔츠 인터넷즉석복권 문구 하나를 두고 그의 인생을 규정하려 했다니. 나는 나약한 젊은이를 비난하기 전에, 내가 겪어온 시대와 다르게 변화한 세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각설하고, 그렇게 며칠 동안 그 청년의 티셔츠 문구를 잊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를 지나다 길모퉁이에서 작은 고깃집 간판을 발견했다. 간판에는 청년의 티셔츠에서 대납대출 보았던 구절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티셔츠로 인해 예전에 본 간판인 듯했다.
길거리에서 보았던 젊은이는 인생을 얕본 게 아니라 고깃집 종업원으로, 티셔츠는 유니폼이었다. 저녁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오후 3시경 출근하는 그에게 깊은 절망이 아닌, 성실한 삶의 냄새를 맡았다. 무슨 일이든지 맡은 일에 독일 직수입 최선을 다하면 희망이 보인다. 부모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드린다고 생각하면 힘들 게 없다. 학비를 내 손으로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공부에 욕심이 더 생긴다.
고깃집 주인은 큰돈 들이지 않고 광고를 톡톡히 한 셈이다. 종업원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다. 그가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티셔츠 한 장 가격으로 광고하며 다니니, 주인이 따로 균등분할 수당이라도 챙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상호도 평범하면 손님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발길을 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옛 광고 문구에 믿음이 가, 비싼 가전제품을 덜컥 샀던 적이 있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것은 젊은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현대는 광고의 홍수 시대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입소문이 나지 않거나 광고가 없으면 소비자가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며칠간이나마 젊은이에게 미안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뜻풀이하여 오해한 것이다. 근래에 사흘을 두고 4일이라고 해석한 젊은이들에게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매스컴에서 세대 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게 이해된다.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를 “인생은 거기서 거기다”라고 알았으니 유구무언이다. 외국어는 단어 한 자만 틀려도 창피를 당하지만, 우리말은 잘못 써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게 요즘 현실이다.
우리글도 좋은 말이 많은데 굳이 외국어를 섞어가며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이 글도 우리말샘 사전을 찾아 정확한 글자로 쓴다고 심혈을 기울였다. 국어사전이 문해력이 부족한 나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다름없다. 고작 티셔츠 한 장에 담긴 재치 있는 글귀를 두고, 나는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오해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표정이 있다. 삶은 몇 개의 글자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진정한 의미는 언제나 그 글자 뒤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고깃집 티셔츠가 아니라, 타인을 성급하게 읽어내려 했던 나의 문해력 부족을 반성했다. 어쩌면 삶이란, 고작 한 장의 옷에 적힌 문구를 넘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때 비로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상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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