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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회경 경제부장
프랑스가 최근 재정 위기와 대규모 시위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유럽의 대표주자이자 서구 진영의 전통적인 강국이 재정 문제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충격적이고 마음 불편한 일이다. 더욱이 프랑스의 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전범 중 하나인 점을 고려할 때 현 프랑스 재정 위기의 리드코프 모델 파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롯한 서구 지식인들이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 이성과 근대성에 대한 깊은 회의와 자기비판을 한 것처럼 이번 프랑스 재정 위기가 인류의 ‘현실적인’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고 새로운 국가 체제에 대한 모색을 촉구한다고 하면 너무 과한 하나미소금융신불자대출 반응일까. 뭔가 납득할 만한 답을 듣고 싶었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장 모네 석좌교수 겸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자타공인 프랑스 최고 전문가다. “프랑스 상황이 매우 심각하네요.”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가볍게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오는 이 교수의 답변이 꽤나 심각하다. “답이 없는 나라예요. 한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재무계산기고장―프랑스의 현 정치적 혼란에 대해 설명해달라.
“프랑스는 최근 정부의 긴축정책을 둘러싸고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예산 절감안 발표 때문이다. 이 예산 절감안에는 연금 동결, 복지 축소, 의료비 인상, 공휴일 축소까지 포함돼 국민의 반발이 컸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의회 불신임을 받아 물러났고 에마뉘 실업급여 엘 마크롱 대통령이 곧바로 측근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는데 이러한 조치가 불만을 더 키웠다. (최근 새 총리도 사임을 했다.) 지난 9월 18일에는 5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경찰 8만 명이 투입될 정도였다. 유류세 인상에 반발해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과 비슷하게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 한국신용평가원 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발생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시한폭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했는데 단독 과반에 도달한 정당이 없는 이른바 ‘헝 의회’ 상태가 됐다.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선 총선에서 약진한 극우파와 손잡을 수 없었고 좌파는 좌파대로 워낙 조각조각 분산돼 있어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중도 입지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극우파는 극우파대로, 신인민전선(NFP·좌파연합)은 신인민전선대로 밀어붙이면서 총리가 수차례 교체될 정도로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도 진영이 긴축 재정, 연금 개혁 등 누구나 싫어하는 정책을 추진하려 하니 잘될 리가 없지 않겠나. 이런 와중에 의회가 62년 만에 총리 불신임안을 가결해 정부를 해산시킴으로써 프랑스 정국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총선에서는 NFP가 180석을 확보하며 제1당이 됐고 대통령 여당 연합인 앙상블이 159석, 극우파 국민연합(RN)이 142석을 차지했다. 그 결과 헝 의회가 됐고 현재 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총리 불신임안이 발의된 경우는 130건 이상이지만 의회 표결을 통과해 정부가 해산된 것은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총리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는 프랑스 헌법 49조 3항에 따른 것이다.
―RN은 왜 부상하게 됐나.
“이민 문제가 가장 크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이민자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자녀들 대학 보내놨더니 취업은 안 되고 미래가 보이질 않으니 외국인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역시 이민 문제 때문이고 트럼피즘 역시 이민 문제에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NFP는 왜 불만인가.
“좌파들은 긴축재정을 한다고 하니 불만이다. 우리 다 같이 이제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게 바로 긴축 정책의 요체 아닌가. 이에 대해 좌파들은 우리는 더 졸라맬 허리띠가 없다. 허리띠를 졸라맬 거면 허리 살 많은 부자들부터 하게끔 하자 그래서 나온 게 부유세 복원이다. 마크롱 정부가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법인세·소득세 인하, 부유세 폐지(금융 부문) 등 이른바 감세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부유세 복원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좌파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대선이 2027년이니까 마크롱 대통령 잔여 임기가 1년 반 정도다. 앞으로 정치적 무중력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62년 만에 총리 불신임이 이뤄졌는데 상당 기간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
―위기 극복을 위해 프랑스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선 모두 동의한다. 제5공화국 헌법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현행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을 보면 대통령이 의회 표결 없이 밀어붙여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소수 내각이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 리더십 강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도 교착 상태에서 이 조항을 여러 번 사용했는데 민주주의 절차 훼손 논란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계 총파업, 대규모 시위 등 사회적 갈등으로 격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헌법 49조 3항은 정부 불안정 해소와 신속 입법이라는 이점이 있지만 대통령·정부 권력의 집중, 의회 심의 약화, 사회적 분열과 민주적 논란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했다. 특히 야권 역시 정부가 헌법 49조 3항을 사용해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24시간 내로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해 표결로 맞설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정국이 혼란에 빠지는 일이 반복됐고 급기야 정부가 해산되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헌법 49조 3항 폐지 혹은 개선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태다.
―재정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적의 합의가 아니라 최소한의 합의다. 너무 풀기 어려운 문제라서 그렇다. 연금·의료·실업수당 등 사회지출을 줄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강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혀온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공멸하니 적어도 국가가 돌아가게는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돼야 하고 그래야 겨우 살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 로드맵을 세워 국민과 해외에 방향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계획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강한 집행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재정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금융 위기로 번질 여지가 많다. 여기까지 가지 않도록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올해 프랑스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로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년 동안 누적된 결과다. 같은 기간 독일의 경우 국가채무 비율이 60%대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정권에 상관없이 꾸준히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충격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최근 신용등급까지 강등되면서 국채 금리가 3.5% 수준으로 뛰었는데 이는 10년 만에 최고치이자 남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수치다. 이렇게 되면 국채 발행 비용이 늘어나면서 재정 압박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문제의 해법은 없나.
“부유세 복원 목소리도 크다. 부유세 복원 주장이 구심점 역할을 해 NFP 구성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에너지 가격 역시 많이 올랐다. 생활의 핵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의료체계 문제, 대중교통 문제 등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를 한꺼번에 전체적으로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감당할 체력이 안 된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좀 더 개혁이 필요한 부분을 핀셋으로 골라내 그곳부터 먼저 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선 합리성과 객관성을 지닌 정책 집단과 이를 뒷받침해줄 합리적인 중도 정치 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현재 프랑스에선 그 세력이 양 극단에 비해 가장 약해져 있다는 게 문제다.”
―정치 개혁, 재정 문제, 사회적 문제 등이 중첩된 복합 위기 상황이라 더욱 탈출구가 안 보이는 것 같다.
“맞다. 현재 프랑스 위기는 단순한 정치적 실패라기보다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인 듯하다. 사회나 정치가 만들어내는 신뢰 설계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한다. 특히 재정 문제, 사회 문제 등과 맞물리면서 위기 수준이 더 깊어졌다. 재정 문제에서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고 정치의 대표성이나 제도 집행력 등이 전반적으로 제고돼야 하는데 글쎄 프랑스가 이를 잘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기 제어가 잘되는 나라가 간혹 있다. 그것은 국가 전통으로 남아 있는 부분인데 내가 알기론 프랑스의 경우 그런 전통이 없다.”
―이번 프랑스의 재정 위기를 계기로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하는 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인데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유럽 국가들의 많은 제도를 원용하고 있지만 이제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지금 상당 부분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주로 사회민주당 계열에서 추구했던 정책들인데 시장에서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쌓아놓은 돈이 있거나 돈을 잘 벌면 이러한 정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다. 국방비 증액으로 복지 예산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전 같은 복지국가 모델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 시사점은.
“한국의 경우 입법부 주도 현상이 두드러진다 할 수 있다. 기존의 제도적인 안정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정부와 의회가 상호 견제를 하면서 가야 하는데 너무 한쪽에 일방적인 힘이 쓸리면서 삼권분립을 비롯한 민주주의 균형이 붕괴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진보의 일방적인 우위와 보수의 극우화, 이렇게 보면 대화와 절충의 통로가 막혔다고 보면 된다. 비유컨대 연골이 다 닳아서 뼈와 뼈가 부딪치는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 재정 건전성 문제 역시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는 순간 여러 문제가 동시 다발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프랑스의 현 재정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라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수많은 정치실험 보여줬던 佛… 재정위기 혼란 보니 서글퍼”■ 이 교수에 佛은 어떤 의미…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 교수 겸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에게 프랑스는 어떤 의미일까. 일단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프랑스를 주제로 한 것이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유럽 통화 통합과 프랑스의 국가 협상 전략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향후 국제적인 전략 구상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사례와 모델에서 참조할 부분이 많을 것 같아 프랑스 정치를 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시에 파리에서 싸구려 와인도 양껏 마셨다고 한다.
이 교수는 “프랑스의 지적 전통을 보면 뛰어난 감각, 그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 등이 특징인 것 같다”며 “프랑스는 수많은 정치적인 실험을 감행한 나라이자 새로운 사회 모델 제시에 엄청난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재정 위기를 맞게 돼 개인적으로 많이 서글프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유럽 통합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장 모네 이름을 붙인 석좌 교수로 선정돼 활동 중이다. 한국유럽학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프랑스·유럽 전문가다.
유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