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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불신의 공기는 이듬해인 1973년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에도 전파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특별청문회를 통해 한창 세상에 알려지던 시기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권력 대신 와인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언론은 보르도에서 시작된 이 사건에 워터게이트와 같은 게이트(gate·은폐나 조직적인 조작이 드러난 사건)를 붙여 ‘와인 무료인터넷 게이트’라는 단어로 불렀습니다.
나폴레옹 시기 이후 오랜 기간 품격과 전통의 상징이던 보르도 와인이 사실은 거짓으로 얼룩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날개 돋힌 듯 퍼져나가면서, 아무 의심 없이 지난 수백년간 보르도 와인을 마시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인, 정말 보르도에서 온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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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와인게이트 당시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매치의 표지. 헤드라인에 ‘보르도에서의 스캔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전통의 와인, 알고보니 벌크 와인?
1973년 6월, 세관 조 농협중앙회 주택담보대출 사관들이 보르도 와인 무역의 심장부인 샤트롱 거리(Quai des Chartrons),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와인 무역사라고 할 수 있는 크뤼즈 상사(Cruse et Fils Frères)를 급습했습니다. 와인 무역의 ‘심장’을 급습한 것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조사관들이 급습을 통해 발견해낸 것들은 보르도 와인을 즐기던 이들에게 충격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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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뤼즈 상사 지하 저장고에는 당시 저가 벌크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해 판매하던 랑그독(Languedoc)과 루시용(Roussillon) 지방의 와인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옆에는 보르도 라벨이 붙은 빈병들도 널려있었고요. 심지어 와인의 색을 맞추기 위해 화학 처리가 된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 명망있는 보르도 와인 무역상 100만원소액대출 이 가짜 보르도 와인을 만들어 팔던 흔적인 것이죠.
그 규모는 300만병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보르도 와인 유통량이 해마다 6000만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유통량의 5%에 해당하는 물량을 가짜 보르도 와인으로 만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날 조사관들의 조사와 결과 발표로 보르도 와인 시장은 요동쳤습니다.
크뤼즈 상사 경영진 중 하나였던 라이오넬 크뤼즈는 “게슈타포식 조사”라며 반발했습니다만, 현장 증거는 이미 충분했습니다. 고급 보르도 와인이라 믿었던 병들이 사실은 저가 원액을 섞은 혼합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프랑스 사회는 물론 세계 와인 시장 전체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와인게이트 사건으로 ‘보르도의 닉슨’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라이오넬 크뤼즈.



보르도에 대한 의심이 계속 퍼지면서, 탐사 기자들은 과도한 감미료 첨가, 다양한 미공개 블렌드, 인공 색소 사용 등 재고 와인을 개선하기 위해 불법적인 관행을 속속 밝혀냈습니다. 와인게이트 법정 소송은 1974년 10월에 시작돼 영국, 캐나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광범위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재판은 거의 두 달 동안 진행되었고, 240페이지에 달하는 판결과 8건의 유죄 판결로 끝났습니다.

사건은 이제 종결되었지만, 여파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보르도 지역 전체 와인 가격이 폭락했고 수출도 둔화됐습니다. 미국의 보르도 와인 수요는 1969년 수준으로 떨어졌고, 1982년 이후에야 비로소 이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스캔들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를 겪은 많은 샤토 생산자들은 네고시앙(와인 무역상)과의 거래를 중단했고, 대부분은 직접 판매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한 품질 문제를 넘어 프랑스 와인 산업 전반의 신뢰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었고, 세계 수출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병들이 거짓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곧 프랑스가 내세운 품격의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파리의 레스토랑들은 재빨리 와인 리스트를 바꿨고, 당시 프랑스 와인의 큰손이던 런던 수입상들은 주문을 보류했습니다. 일부 바이어는 아예 “프랑스 와인은 믿을 수 없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쌓인 신뢰가 무너지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다룬 Le Nouvel Observateur의 1973년 8월 27일 2면 기사




무너진 이름과 다시 세운 규칙
보르도는 그 시절 세계 와인의 중심이었습니다. 가격은 매년 올랐고, 수요는 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도밭의 생산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공급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의 와인을 섞는다는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르도산’이라는 이름이 마케팅의 언어로만 소비된 것이죠. 네고시앙 중심의 구조가 만들어낸 과열된 시장이 스스로를 무너뜨린 셈이었습니다.

크뤼즈 상사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사회는 술렁였습니다. 크뤼즈 형제는 유죄를 선고받았고, 위조된 와인은 전량 회수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정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AOC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
라벨에는 원산지와 병입 장소를 명확히 써야 했고, ‘샤또에서 병입함(mis en bouteille au château)’이라는 문구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네고시앙이 와인을 대량으로 구입해 병입하는 관행이 일반적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 많은 샤또가 직접 병입을 선택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품질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 문구는 지금도 보르도 와인 라벨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보르도 와인 산업은 스타일 자체를 바꾸게 됩니다. 단순한 농민으로 남았던 생산자들이 스스로 와인 브랜드의 주체로 변했습니다. 시장에서의 권력이 상인에서 포도밭으로, 자본에서 양심으로 이동하게된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샤또 마고 1996 빈티지의 라벨. 위쪽에 ‘샤또에서 병입함(mis en bouteille au château)’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시간은 상처를 덮었지만, 흔적까지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와인게이트는 단순한 위조 사건이 아니라, 신뢰가 무너질 때 산업 전체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프랑스 와인 업계는 투명성과 기록을 생명처럼 여기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샤또 병입 표시, 생산 이력 공개, 원산지 검증 제도는 모두 그 시절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한 병의 보르도 와인은 그때 세워진 규칙과 감시의 결과물입니다. 1973년의 와인게이트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와인 산업이 매일 되새겨야 하는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