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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파도북스 제공



그림을 글로 옮겨 놓은 듯한 소설이 있다. 체코와 독일, 핀란드를 오가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일에 휘말렸던 여성 '아디나 셰이발'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다. 젊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서 무너지는 과정, 복 대구은행중소기업대출 수와 폭로 등 현대미술을 연상시키는 필체로 씌어졌다. 명확한 묘사나 뚜렷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많은 생각과 곱씹어볼 거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소설을 지배하는 색채는 푸른색이다. 마르크 샤갈의 푸른색처럼 단순한 슬픔을 넘어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푸른 여자'가 이 색깔을 대표한다. 회생절차 저자는 푸른 여자가 무엇인지 잘라 제시하지는 않는다. 푸른 여자는 아디나의 감정이 격앙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일종의 장치다.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화지 위 붓이다.
책의 전개는 모호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자 했던 한 여성을 짓밟고도 유력 인사라는 이유로 처벌 저금리대출문의 은커녕 비판조차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다. 아디나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자는 문화 홍보대사이자 인권보호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거물이다. 몸 속을 찢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주변인들은 되레 아디나를 비난한다.
이 소설의 초점은 범죄 행위 자체보다는 사회의 대응에 맞춰져 있다. 아디나의 고발을 막으려는 주변인들, 자초지종을 듣고도 '이 가실게요 런 고발은 유행이다'고 가볍게 말하는 자들, 전말을 알고서도 가해자에게 상을 주려는 자들. 범행을 저질렀지만 묻히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재벌 총수로 '잘 나가는' 인사들의 모습을 아우르는 냉혹한 비판이다.
결국 아디나는 칼을 들 수밖에 없다. 자신을 짓밟은 인물이 상을 받는 자리를 찾아 체온으로 덥힌 강철 칼날을 드는 아파트 아디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독자는 마치 난해한 그림을 감상하듯 책을 읽게 된다. 책은 그 과정에서 직접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독자가 느낄 감정에 집중하고자 했다. 작가보다는 미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8년에 걸쳐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다는 느낌보다는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느낌이 든다. 여러 차례 반복해 읽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수두룩하다. 꿈을 꾸는 듯한 표현이나 전개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저자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은 독일 포츠담과 뉴욕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소설 '열린 조리개'로 작가가 됐다. '눈 아래', '투폴레프 134' 등 인간의 삶과 역사가 영향을 주고받는 소설을 써 명성을 얻었다. 독일 문학계 최고 권위의 헤르만 헤세 문학상과 라인가우 문학상을 받았다.
◇푸른 여자, 파도북스, 1만 9800원.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